2) 역할이론
주고받기를 한다는 자체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관계가 없다면 주고받기도 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자리를 정한 채 주고 받기를 한다. 자식으로서 부모와 학생으로서 선생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1) 역할 행동과 역할기대
우리는 남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자리를 정하며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답다'는 말이 이러한 역할체계를 잘 표현해 준다. 친구라면 친구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행동해야 한다. 역할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리', '본분'과도 같다. 자식은 부모에게 자식답게 행동해야 자식의 도리를 하는 것이고, 부모도 부모답게 행동해야 부모의 본분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부모-자식 연을 끊자" 또는 "엄마/아빠가 그래?" 같은 말들이 나온다. 학생이 선생에게 학생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너 나를 뭐로 보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학생의 자리를 거부하면 선생의 자리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이 선생다워야 스스로 학생 노릇을 한다. 이는 대인관계의 양방향성을 의미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중요한 역할은 자식과 학생 역할이며, 대학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착한 아들/ 딸이 되기 위해서 한국 청소년들은 공부하고 시험 보는 기계로 사는 삶을 감수한다. 부모도 부모 역할을 하느라 고생한다. 선생은 물론 부모만큼 희생하지 않고 월급도 받는다. 교사의 역할은 공부 가르치는 것이지만, 교사-학생 관계에 부모-자식 관계가 겹쳐져서 교사는 학생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학생은 교사에게 자식처럼 순종할 것이 기대, 요구된다. 이런 관계에서 오가는 말은 "학생이 주제넘게"와 "선생이면 다예요?"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모, 교사는 나아가 '기성세대'는 학생들에게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이래라저래라하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주고받기, 즉 관계 맺기가 싫을 수밖에 없다.
부모, 교사와의 관계만큼은 아니겠지만 학급 친구들과의 관계도 편안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고, 동료 학생들과 성적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이므로, '사람 사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대학에 오는 것이다. 관계 맺기는 그들이 사회생활을 위해 배워야 하는 첫 번째 과제가 된다.
(2) 역할갈등
대인관계에서 겪는 갈등은 역할기대들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에는 다음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① 한 관계 속에서 서로 역할정의가 다르다. 전형적인 경우가 A가 다른 이성친구를 사귄다든지 B는 둘이 예언이라고 생각하는 이성관계이다. A가 다른 이성 친구를 사귄다든지 B가 자꾸 결혼 얘기를 하는 경우에는 그 관계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② 같은 역할에 대해 관련된 여러 사람이 다른 기대를 가진다. 학생과 교수의 관계를 예로 들자, 학생이 생각하는 학생 역할과 교수 역할은 교수가 생각하는 학생 및 교수 역할과 다를 수가 있다. 예컨대 교수는 '학생의 본업은 공부다', '학생은 교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학생이 생각하는 자기 역할에는 공부, 순종이 안 들어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학생은 '교수라면 자기학과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교수는 강의만 충실하면 된다고 믿는다면, 관계가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 '친한 친구'의 역할정의가 서로 달라서 상처 입은 경험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부부 갈등의 상당 부분도 아내가 남편의 역할 정의가 각자 다른 데서 온다.
③ 우리는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학생이라면 학생이자, 여자/남자이자, 누구의 친구, 선/후배이자, 누구의 딸/아들이자, 누구의 형/동생 등이다. 사회인이 되면 역할이 더 복잡해져서 직장에서 어떤 지위가 있고, 아내/남편, 어머니/아버지 등의 역할이 생긴다. 각각의 역할에 대해 기대되는 행동들이 서로 불일치하면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를테면, 무리한 부탁이지만 친구나 동창으로서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규율상 안 되니까 거절할 것인가?
④ 역할은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쓰는 일종의 탈이고, 어떤 탈을 쓰든지 그 뒤에는 자기 자신이라는 주체가 있다. 어느 한 역할과 지나치게 동일시를 해도, 모든 것과 너무 거리를 두어도 문제가 된다. 예컨대 교수는 학교에서만 교수인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에게도 교수 '행세를 한다면 여러 가지 대인관계들이 삐걱거린다. 또 우리의 어머니 세대에는 어머니 역할에만 충실하고 자기 자신은 아예 없었던 삶들이 많았다. 이렇게 어느 하나의 역할이 자기 자신의 본체라고 믿어도 삶이 빈곤해지지만, 반대로 자기가 맡은 어느 역할과도 동일시를 안 하는 것도 문제이다. '대학이 혹은 학과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우리 부모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너, 나는 나다' 하고 하는 학생, 아들, 친구가 바로 그런 예가 된다.
우리가 맡은 역할 중에는 남자/여자, 아들/딸처럼 운명으로 주어지는 것도 있고, 어느 학과 학생, 누구의 친구나 배우자라는 것처럼 스스로 선택한 역할들도 있다. 어느 역할에든 상당한 애착을 가지는 것이 본인 및 상대방들에게 편안하나 그 역할 중 어느 것도 자기 자신 전체일 수는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가 아무리 엄청나도 아들/딸로서만 인생을 살 수는 없는 일이고 '나는 나'다. 반면 부모가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역시 내 부모이며, 내가 그들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나의 정체에서 지워낼 수는 없다.
⑤ '나는 나'일 때 '나'는 개성을 가진 주체, 내 인생의 주인이면서 기본적 인권을 지닌 인간이다. 학생, 아들/딸, 편의점 직원 등으로서 선생, 부모, 손님/사장에게 역할 행동을 하면서도 '나는 나'이자 '인간' 이므로 '인간 대접'을 요구해야 한다. 나는 그리고 타인도 학생, 직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이고 인간이다. 즉, 역할 관계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다.
교환이론에서 우리는 대인관계가 본질상 주고받기의 계산에 기초한다는 것을 배웠다. 역할이론에서는 대인관계란 각자가 정해진 탈을 쓰고 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인간에 대해서 환멸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러한 측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오히려 대인관계가 훨씬 더 원만해진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많은 갈등이 '성격 차이'라기보다는 역할기대에서의 불협화음, 서로 주고받는다고 생각한 것에서의 차이 내지 오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것은 분명히 하면 된다. 이를테면 역할갈등의 예를 들어 각자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이라는 것을 서로 분명히 하면 문제의 많은 부분이 저절로 해결이 된다.
역할기대가 분명해지면 주고받기 '계산'도 분명해질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중요하게 여기는 역할이라도 어차피 여러 개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직장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아버지/어머니로서, 남편/아내로서의 역할을 아주 무시해 버린다면, 가정이 깨지는데 직장에 선들 일에 집중할 수가 있겠는가?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안다면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직장 일을 미루어 두고 다른 역할들에 충실할 수가 있다. '챙겨야' 할 관계가 여럿이라는 것을 의식하면 어느 한 관계에 '올 인' 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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